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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가장 강력한 항암제_김경란 임상연구조교수(정신과)

등록일자
2010-03-03

희망, 가장 강력한 항암제_김경란 임상연구조교수(정신과)

하버드 의대 종양학 교수 그루프먼은 <희망의 해부학>에서 생명을 다루는 냉철한 과학자로서 희망이 보여주는 신비한 작용을 이렇게 소개했다. “환자들의 병에 대한 좌절은 종양만큼이나 쉽게 퍼진다. 반면에 희망은 종양을 녹여버리는 엄청난 힘을 가졌다.” 
현대인의 대표적인 사망원인인 ‘암’은 이름만으로도 두려운 존재다. 특히 암판정을 받는 본인의 심정은 그 사람의 나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스트레스로 다가오며 더욱이 짧지 않은 치료 기간 동안 그 스트레스는 배가 되어 심각한 정신과적 증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최근 암진단과 치료의 의학적 기술 발달에 힘입어 암환자의 생존률이 과거에 비해 매우 높아졌다. 암을 바라보는 시각도 ‘불치병’에서 ‘만성병’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 결과 암의 완치뿐 아니라 삶의 질 향상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와 함께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 퍼지게 된 것이다.

통계적으로 암환자의 47%가 우울, 불안, 불면 등 정서적 고통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러나 “암환자가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어?”라며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고정된 생각과 ‘정신과’라고 하면 망설이기부터 하는 오래된 편견 때문에 실제로 정신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면 내과를 찾듯이 불안하거나 우울하면 정신과를 방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 암환자의 심리적 증상과 치료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암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에서는 정신과 전문의가 전체 치료팀과 유기적인 협력 체계 하에 암환자의 정신 건강을 위해 전문적인 상담과 진료를 하고 있다.

암환자가 겪는 심리적 증상

암환자는 흔히 4D라고 불리는 죽음(Death), 장애(Disability), 의존(Dependence on others), 외모 변화(Disfiguration)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하며 심리적 위기를 겪는다. 암진단을 받은 암환자의 정서적 반응은 일반적으로 시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눈다. 초기 반응 단계는 암을 진단받은 지 1주일 이내에 부정, 불신, 절망 등을 경험하는 시기로서, 일부 환자는 심한 불안 때문에 검사나 치료 방법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두 번째 단계는 감정이 동요하는 시기로, 이 시기의 환자는 암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반복해서 떠올리며, 우울, 불안, 불면, 집중력 장애, 식욕 부진 등이 1-2주 정도 지속되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적응 단계로 진단과 치료 과정을 받아들이고 개인마다 자신의 대처 방식을 찾아 일상 생활로 돌아가는 단계다. 이러한 세 단계는 병이 재발 또는 악화될 때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위와 같은 반응은 암을 진단받는 환자들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정상’ 반응이라고 본다. 평소에 경험하지 않았던 우울, 불안 증상 등을 포함한 감정의 기복이 있을 수 있으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치료에 대한 의지를 갖고 정서적 회복 단계를 밟는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또는 일반적인 치료 과정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암환자들도 있을 수 있다. 암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정신적인 문제로는 적응 장애, 우울증, 불안 장애, 섬망 등이 있다. 

암관련 이미지


특히 암환자의 10-20% 정도는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우울증을 앓는다. 기분 저하, 의욕 감소, 불면증과 더불어 식사를 못하거나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지는 등 다양한 신체 증상이 동반된다. 암환자가 복용하는 여러 약제들도 우울 증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자신감을 잃어 겁이 많아지고 지나치게 의존하기도 한다. 우울 증상이 심한 경우에, 특히 조절되지 않는 통증이 있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자의 경우 자살 위험까지 높아지는데, 암환자의 자살률은 일반 집단과 비교하여 2-4배 정도 더 높다고 한다.

또 죽음에 대한 공포, 재발이나 전이 등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앞으로 닥쳐올 변화와 고통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 장애가 발생하기도 한다. 작은 신체 변화에도 민감하며 지나치게 걱정한다. 주기적인 항암치료가 예정되어 있을 때, 두려운 시술을 앞두고 있을 때,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와 같이 특정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불안은 더욱 심해진다.

손 내미는 것을 망설이지 말자

암환자에게 다양한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이 일반인보다 높은 것은 당연하다. 먼저 암이라는 갑작스런 진단에서 오는 충격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통증, 구토 등 암의 증상 자체로 인한 고통과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수술이나 항암치료 등 치료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이와 같은 심리적인 문제는 암치료에 많은 영향을 준다. 먼저 심리적인 측면에서 우울하고 불안하거나 불면증이 지속되는 경우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치료 의지가 약해져 환자가 잘못된판단을 내릴 수 있다. 또 신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스트레스가 암의 진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많은 보고가 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면역세포의 활성화를 억제해 암의 발생을 유도하고 암이 진행하는 과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안정적인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암의 치료 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며, 환자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열심히 치료에 임하는 것이 치료 성패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아가 심리적인 부분은 암환자의 삶의 질에도 큰 영향을 준다.

암환자의 가족들 또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때 극단적인 방법(술, 흡연 등)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하기보다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환자에 대한 사랑과 기도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좋다. 환자는 우울한데 가족이 지나치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환자가 괴리감을 느낄 수 있으며, 환자를 제외하고 따로 가족회의를 하는 모습은 환자의 우울한 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중요한 사항들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족들은 절망에 빠져 있기보다는 의연한 태도를 보이며 되도록 밝은 모습을 유지하되, 병의 객관적 정보 수집에 더 적극적로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암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거나, 암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로서 심리적 스트레스가 너무 과중하여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면 이제는 망설이지 말고 손을 내밀어 정신건강클리닉을 찾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권한다. 상담과 치료를 통해 고통스럽기만 한 치료 과정을 훨씬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희망과 긍정의 힘을 믿으며 혹독한 병마와 싸웠던 고 장영희 교수는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항암제는 희망이다. 절망은 현실의 고통을 가중시키지만, 희망은 암치료 효과를 높이는 든든한 지원군임을 잊지 말자. 
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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